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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리뷰

[영화리뷰]'라스트 갓파더', 이만하면 괜찮은 심형래 표 영화







심형래 주연, 감독의 신작 라스트 갓파더가 12월 29일 개봉했다. 구체적인 평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우려에도 불과하고 일단 관객 반응은 좋다. 시작부터 '헬로우 고스트'를 가볍게 제치고 예매율 1위로 올라섰다. 출발은 깔끔했고, 이제 경과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라스트 갓파더는 대중에 공개된 지 3일만에 참 다양한 반응을 이끌었다. 화제작 답다. 너무 밋밋했다는 반응이나 예고편보다도 볼 것 없었다는 반응, 유치했다는 반응 등 혹평도 있지만 생각보다 좋은 기류가 강하다.

애국심 마케팅의 영향은 아닌 것 같다. 디워 때와는 다르게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였다. 무난한 코미디 장르여서 연말과 연초에 가족과 함께 보기에는 더할나위 없다.

상황에 따라 악평이 될 수도 있는 평가지만 이것은 '라스트 갓파더'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왜냐면, 심형래 감독이 그것을 의도했던 영화였기 때문에. 그가 원하던 목표를 달성했다는 말이다.

우려했던 영화 구성상의 문제점도 물론 있었다. 다소 유치했다면 유치했고, 플롯이 썩 탄탄하지는 않았다. 개연성이 떨어졌다. 연출에서도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조금 구체적으로 보자. 영구가 생각없이 수금하러 돌아다닌 것이 기적적인 작용을 거쳐 오히려 영구의 평판을 높인다거나 하는 장면은 개연성이 심하게 떨어지고 유치했다. 한자락 한다던 굵직한 마피아들이 기껏 하는 일이라곤 동네 상인들에게 수금하는것도 좀 리얼리티가 떨어졌고 그 유명한 마피아의 전면전이 동네 패싸움 만한 스케일이었던 점도 아쉬웠다. 전체적으로는, 유기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이었고 두서없었다.

그러나 뭐, 괜찮다. 봐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재미있었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니까 봐 줄 수 있다. '디워'였다면 결단코 수십번은 까여야 될 요소겠지만 라스트 갓파더는 괜찮다. 재밌으라고 만든 영화니까 재밌으면 그만이다. 물론 구성 상의 문제점이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개연성이 있으려면 마피아 보스의 숨겨둔 아들이 영구여서는 안됐다. 전혀 안 닮았고 말도 안되는 설정인데, 이게 무슨 개연성인가?

개연성 찾으려면 그냥 코미디같은 장르의 영화는 보지 않기를 권장한다. 아니 모든 영화는 현실보다는 개연성이 떨어지므로 아예 영화를 안 보는 게 가장 좋겠다.

코미디 영화에서의 개연성이란 영화를 이해하는 데 지장없을 정도면 된다. 어이없어서 실소할 정도까지는 괜찮다. 너무 말도 안돼서 화가 날 정도만 아니라면 적절한 개연성이다.

덧붙이자면, 그래도 '영구와 땡칠이'보다는 좀 더 사실적인 전개였다.

연출은 솔직히 좀 아쉬웠다. 웃겨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웅장해 버리면 곤란하다는 상황도 이해하지만 잘 나간다는 두 마피아가 전면전을 붙는데 둘이 합쳐 스무명 남짓밖에 안 된다니. 동네 양아치들이 서바이벌 게임 하는 것 같았다. 이왕이면 이런 부분에서도 조금 퀄리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극장의 공기는 밝았다. 관객은 '영구와 땡칠이'를 볼 때처럼 추억에 잠겼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행복해 했다. 깔깔깔 웃던 뒷 자석 아이의 웃음소리도, 쩌렁쩌렁 울리던 계 모임 나온 아줌마 목소리도 원래 영화에 삽입된 소리처럼 느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재미없었다.'라고 하는 리뷰를 몇번 봤지만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당신들은 얼마나 재미있어야 웃어줄 건가?

상영시간 1시간 30분 내내 웃어야만 웃긴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럼 액션영화는 하루 종일 쌈박질만 하고, 멜로영화는 하루 종일 사랑만 해야 한다.

코미디 영화는 개그콘서트의 개그코너와는 다르다. 아무리 웃기는 게 목적이라지만 그래도 하나의 '영화'다. 완급조절도 해야하고 스토리의 뼈대는 있어야 한다. 웃길 때만 웃겨주면 된다. 하루 종일 웃음이 빵빵 터지게 만드는 것은 미스터 빈도, 찰리 채플린도 하지 못한다.

라스트 갓파더에서 웃음 코드는 적당히 지루하지 않을만큼 도사리고 있었으며 적당한 시점에 큰 웃음도 몇 번 안겨주었다. 이거면 코미디 영화로서 평균은 한 것이다.

하지만 추가점수를 주고싶은 부분이 있다. 라스트 갓파더는 영구와 슬랩스틱만 존재했던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다. 휴머니즘적이라고 하는 것이 그의 슬랩스틱에 함께 녹아 있었다.

사랑과 인류애가 없는 영화라면 실컷 웃고 나와도 집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든다. 코미디 영화라고해서 코믹 말고 아무것도 없으면 사람이 피폐해지기 마련. '갈갈이 패밀리'시리즈는 그래서 실패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 영화는 '코미디' 앞에 가장 만만한 '로맨틱'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곤 한다. 그러나 로맨틱이 빠진 코미디는 만들 줄 모른다.

웃긴 것과 재미있는 것은 다르다. 억지로 웃음을 짜내면 관객은 웃는다. 몸을 간지럽히면 웃는 것과 같은 반사작용이다. 그러나 '재미'는 웃음뿐 아니라 그 밖의 무언가를 더 필요로 한다. 가장 만만한 건 '해피 엔딩'을 통해 행복하게 스토리를 무마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해피 엔딩은 영화 속 주인공을 행복하게 만들지만 관객까지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그게 안이한 해피 엔딩이라는 것이다.

심형래 감독의 결말은 '대화합'이었다. 언제는 아니었냐는 듯, 당연한 듯 또 다시 해피엔딩을 택했다. '영구와 땡칠이'때도 했던 그 결말.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겹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따뜻하다. 그것이 안이한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 전반에 희극인 심형래의 인생이 절절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 있었다. 심형래식 코미디의 근원은 '한국적 정서'에 있다고. 슬랩스틱이라는 외국어가 그를 수식하고 있지만 그 근본 정서는 100% 국산이다. 그의 슬랩스틱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한국인의 낙천적 성격과 훈훈한 정을 바탕으로 한 인간애와 흥이 담겨있다.

영화에 악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악인과의 대립보다는 훨씬 더 사랑이 넘쳐흐른다. 악인은 그냥 극적 효과를 위해 등장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에 대한 몰입이나 묘사를 불필요하다. 그는 순진할 정도로 좋은 면만 보고 좋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안된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같아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 베스트 셀러 소설가의 펜으로도 남의 나라 고유의 정서는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요즘처럼 돈과 속도와 경쟁으로 피폐해진 우리는 안 된다.

거부하고 싶다면 당장 이런 시나리오를 써 보던가. 아마 안 될 걸? 이것보다 더 탄탄하고 메시지 있고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을 만들어 냈다면 그 작품은 '나홀로 집에' 이상의 가족영화가 될 것이 분명하니 아무한테나 함부로 보여주지 말고 꽁꽁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헐리우드 여행갈 일 있으면 들고 가서 잘 해 봐라.

라스트 갓파더가 한국적이라서 외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외국의 입맛에 맞추고 안 맞추고가 아니다. '신토불이', '우리 땅에는 우리 것'이라는 말처럼 한국인은 한국인다운 것을 했을 때 우리에게도, 그리고 외국인에게도 가장 매력적이고 완벽한 것이 된다. 어쩌면 디워나 용가리가 외국에서 실패한 이유가 한국적 정서를 이국적 기대치에 맞추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슬랩스틱의 대가 찰리 채플린은 충분한 웃음과 깊이있는 메시지를 선사했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울고 있는 피에로같은 것이었다. 예술적이었지만 그의 현실 비판과 조롱은 우리를 기쁘게 만들지는 못했다. 후대의 미스터 빈은 그냥 웃겼다. 그러나 그를 보며 웃고 나면 너무나 허탈하다. 생각 없는 웃음은 결국 그 시간만 지나면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반면 심형래는 우리를 웃기는 동시에 행복하게도 만들어 준다. 이것은 오랜 세월 희극인으로 활동하면서 만들어 온 심형래 감독의 노하우이자 철학이다. 수 십년간 대중을 즐겁게 만들 방법을 고민한 끝에 얻어낸 결실인 것이다.






[written by colum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