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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이야기/예능

[칼럼]'나가수' 가수는 있지만 음악은 없다!? - 의미와 형식의 모순







비주얼과 유행 위주인 최근의 음악 동향을 생각해 봤을 때 MBC의 '나는가수다'(나가수)가 가요계와 방송계에 가져온 파급력은 가수가 '가창력'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돌이킬 수 있게 했다는 데 의의가 있고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가수는 많은 논란과 비난의 핵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논란들은 나가수의 방송 전부터 있어왔고 한 가지 원인만이 작용한 것도 아니다. 복합적 요인이 골고루 작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가수다'라는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가수다'의 문제점에 대해 꼬집는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고 다면적으로 얽힌 문제를 하나로 풀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가수의 출발부터 지금까지, 방송 전부터 포함하면 이제 약 3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게시판과 댓글 등으로 나가수의 존속과 방향 등에 관한 논의가 많았건만 그들은 나가수의 일부만 '까는 데' 급급하지 궁극적 원인이나 해결책을 찾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옳을까?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해 개인적 소견을 보태어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포멧과 사안에 대한 누구나 알 법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나가수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을 종합해 보면, 그것들은 어느 한 지점에서 모임을 알 수 있다. 바로 '탈락제도'이다. 모든 문제가 모이는 곳이 '탈락'이라는 단어 안에 있다. 문제의 핵심이다.

탈락제도는 가수에게 부담이 되거나 '경쟁'과 '서열'에 위계화되는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안타깝지만, 이것을 프로그램의 근본적 문제로는 볼 수 없다. 한국의 위계적이고 경쟁적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배경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프로그램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회적 측면에서 살피기보다는 보다 직접적인, 프로그램이 '예술'에 관련된 담론을 형성하는 점을 고려해 문화적 측면이나 프로그램 내적(구성적)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경쟁'을 하고 '탈락'을 한다. 명망 높은 가수가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큰 위험이다.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탈락은 큰 치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한 명성을 쌓지 못했거나 자존심 없는 뮤지션이라면(그런 뮤지션이 있을까?) 프로그램에 출연 자체만으로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에 의거하면 '훌륭한 뮤지션은 대체로 다른 무엇보다 그들 자체의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다른 가수와 비교당하고, 저평가당한다면 그들의 고상한 예술성은 큰 상처를 입고, 그들에게 치욕이 될 것이다.

이 제도가 존재하는 한 가수들은 꼴찌를 면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내가 가수인데'하며 매번 하던 대로,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가수는 그들을 탈락시키는 주체인 '청중평가단'에게 아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청중평가단이 연령대와 성별을 고려하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분별있는 관객의 입장에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대중'을 모집단으로 가질 뿐이다. 가수의 아부는 이처럼 대중의 수준에 맞는, 그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제작진이 아무리 애를 써도 탈락이라는 제도가 살아있고 그 주체가 청중평가단인 한, 이 사실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최대한 많은 대중을 만족시키는 공연은 훌륭한 공연이고 그들이 훌륭한 가수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대중을 만족시켜야만 훌륭한 공연이고 가수는 아니다. '나가수다'는 이점을 완벽하게 간과했다.

프로그램은 훌륭한 공연을 연출하고 훌륭한 가수를 검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진정한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다.

가수는 관객을 의식해 대중이 좋아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가수도 있다. 그들이 보여준 무대는 평상시와 전혀 다를 것 없는, 매번 보는 듯한 무대였다. 윤도현이나 임재범처럼 원래 파워풀한 가창력을 보이는 경우의 가수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외에 이런 가수들(예를들면 저번 주의 김범수, 정엽, 김건모) 은 현재 탈락했거나, 탈락위기에 처해있다.

나머지 가수들도 그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박정현의 경우는 꾸준히 좋은 기록을 낸 편이지만, 팬이라면 그것이 박정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나가수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박정현이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때의 모습이다. 실제의 박정현은 그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하고 때로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을 법한 노래도 자주 부른다. 대중적 모습역시 그녀의 일부이지만, 가수의 특정 조각만 집중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무대를 최고의 무대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 밖에 다른 모든 가수들도 나름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모르는 노래를 해도 안되고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보일 수없으면 안 된다. 파워풀과는 좀 거리가 먼 이소라는 이 점때문에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백지영의 경우는 결국 자진하차했다.

이런 행위를 미연에 감지한 시청자들은 방송 전부터 많은 반대 여론을 형성했다. 이에 김영희 피디는 '누가 못햇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훌륭한 무대가 보여졌고 얼마나 감동적이었는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니 두고봐 달라'며 탈락이 굴욕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일단 방송부터 보고 말하자'는 식으로 화살을 일단 거두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탈락'에 대한 관념으로는 그것이 뮤지션의 예술성에 상처를 입히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김영희 피디의 발언은 '탈락'이 내포하는 의미를 쇄신시키겠다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은 실패했거나,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많이 비꼬는 의미에서는 잘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나가수에서의 탈락은 가수에게 치욕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청중 평가단의 권위가 끊임없이 의심받고 있고, 가수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라며 반박할 수도 있지만, '청중이 나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내가 못했기 때문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변명하고, 또 그들을 '비겁하다'말하는 무리와 싸우고 회피하는 것, 그들을 옹호하는 다른 무리가 있어 해명하려 애쓴다는 모든 것 자체가 가수와 팬 모두에게 가장 치욕적일 것이다.

현재 탈락자인 김건모와 정엽이 처한 상황이다. 그들은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해서 떨어진 것일 뿐, 상대적으로 수준 낮은 가수는 아니다. 그러나 탈락의 치욕이나 그들의 음악성 따위는 이미 관심 밖이고 오로지 관심은 '어떻게 해야 룰을 깨지 않아 시청자들에게 몰매를 맞지 않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영상, 음악을 구연해낼까?'일 뿐이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소외되는 이 현상의 궁극적 원인은, 감히 말하자면 '의미와 형식의 모순'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나는가수다'의 작의는 유행이나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최고의 뮤지션을 공연을 통해 긍정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비주류를 주류'로 편입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타 음악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방송 시간대를 일요일 황금시간대로 옮겼고 대중과 가까운 곳에 자리잡게 했다. 의도는 매우 좋다.
 
그러나 그것을 구현하는 형식이 틀렸다. 비주류를 주류로 편입시키겠다면 프로그램의 형식을 비주류와 주류를 중화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가수'의 형식은 어떤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포멧이며 오직 '서바이벌 오디션'과는 '출연진이 다르다는 것'만이 다르다. 매니저 시스템 등은 출연진이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바뀐데 대한 부산물로 아주 사소한 것일 뿐이다. 즉, 주류와 비주류의 혼합이 아니라 이것은 주류적 형식만으로 비주류를 다루겠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그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형식으로 구현되었을 때 의미가 있다. TV프로그램도 예술이기에 역시 형식과 의미의 조화는 필수적이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니, 모든 관절이 삐걱댈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방송이 종영될 때까지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예를들어 지금 그토록 칭송받는 임재범이 탈락된다면? 박정현이 탈락된다면? 팬들이 과연 겸허히 결과를 수용할까? 아니면 일대 파란이 일어날까? 또다시 피디가 교체되고 방송이 한달 쯤 쉬거나 사이버 테러라도 일어날까? 팬들이 방송국 앞에 모여 시위를 할지도, 댓글 테러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깔 때는 실컷 까 놓고 이제와서 발 빼기는 민망하지만, 정확한 대책을 마련하는 수는 필자에게는 없다. 이걸 할 수 있었으면 필자가 적어도 방구석에서 키보드나 두드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_-) 대중성이나 예술성, 둘 중에 하나만 확실하게 잡으라면 할 수 있겠지만 둘 다를 사로잡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그러게 새 장르를 개척하는 짓을 누가 하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의도 자체가 너무 기특하기 때문에 애정을 갖고 포괄적 충고 정도는 하고 싶다. 

기본적으로는 형식은 '비주류'의 관점에 맞춰야 한다. 뿌리는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에 두자는 것이다. 그것을 전개하는 방식에만 변화를 줘야 한다. 그것은 지금의 '탈락제도'처럼 뮤지션의 음악에 영향을 주는 요소여서는 안된다. 다만 음악 자체와는 관련없는 음악 외적인 부분에는 얼마든지 손을 대도 상관없다.

가장 전형적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방식을 하나 꼽자면 '드라마'를 추가하는 것이다. 사실 원래는 '나가수'도 '드라마'를 조금쯤 노렸으나 슈퍼스타K의 조잡한 전개로도 가능했던 그것이 전혀 되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다. 아마추어는 어설프기 때문에 가만 놔 둬도 긴장감이 있지만 프로 뮤지션은 거의 완벽해서 딱히 긴장감도 없다. 유일한 긴장감은 순위발표 때 뿐이다. 혹시라도 프로 뮤지션의 어설픈 모습, 아마추어같은 모습이 화면에 잡혀도 문제다. 그랬다가는 '이소라'가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정신병자가 되거나 '김제동'처럼 철부지 떼쟁이가 되는 수가 있다. 슈퍼스타K가 '김그림'을 포함 몇 명이 정신병자에 가깝게 나타나더라도 아마추어의 인권이나 명예 따위는 존중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용해먹기 좋았던 상황과는 다르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리얼리티를 추구해야하고 출연진을 존중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얼리티를 버리고, 말 그대로 드라마를 만들어도 된다. 리얼리티가 없으면 어떤가? 공연만 사실이면 되는 것 아닌가? '웃어라 동해야'같은 막장이라도 꾸며낸 다음 시청자에게 이것이 거짓이다라는 것을 알려주면 된다. 공연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일석이조다.

몇 해 전 일본의 한 프로그램은 실제로 음악 프로그램과 픽션을 합성시켜 장르가 모호한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다. 꼭 이것을 따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형식을 바꾸게 된다면 이제와서 또 룰을 깨자는 것이냐, 시청자를 기만하는 것이냐 하는 논의가 반드시 생길 줄로 안다. 그러나 지금의 구성이 문제가 있다면 바꾸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지금의 것이 좋지 않다면 바꾸는 것이 옳다. 김건모의 탈락 때의 상황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룰을 깬 행위 자체가 아니다. 그 행위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다만 출연진의 안위를 위해서였다는 것이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더이상 제작진은 불필요하게 '룰 변경'의 트라우마에 시달릴 필요 없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기존의 것을 바꿀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미 '나가수'는 '노래하는 가수'를 잊은지 한참 된 대중에게 진짜 가수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고 가능성을 확인하다 못해 흥행시켰다는 점에서 전례없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형식과 의미 면에서까지 '최고'를 추구한다면, 어쩌면 나가수는 대한민국 방송과 음악 역사에까지 길이 남을 방송이 될 지도 모른다.




[written by colum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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