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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이야기/칼럼

[칼럼]'시크릿 가든' 기억상실에만 날카로운 사람들

한국 취업 신문 협력기사(주소 미정)






요즘 드라마 중에서는 SBS 주말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단연 화제다. 현빈과 하지원 이필립 유인나같은 선남선녀가 주인공인 것과 더불어 영혼이 바뀐다는 재미난 소재로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인기를 끄는 중이다. 최근에는 드라마가 막바지로 접어듦에 따라 극적 긴장도가 높아지는 중인데 그 과정에서 현빈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된다. 이것은 현재 사소한 논란거리로 떠오르게 됐다.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가 너무 진부하다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은 과거 불치병과 함께 한국 드라마에만 기형적으로 많이 쓰인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최근에는 잘 사용되지 않은 소재다. 그것이 이번에 또 사용된 데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이다.

20세기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기억상실증, 암 등의 난치병, 백혈병과 골수이식 같은 소재는 일종의 흥행 보증 수표였기 때문에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이 사용되었다. 그 결과 시청자의 비난이 높아졌고 작가 층의 자정의식도 함께 생겨났다. 그래서 요즘은 드라마의 소재가 상대적으로 다양해졌고 가끔씩 '참신하다'고 할 만한 작품들도 하나 둘씩 튀어나오는 추세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의 시청자들이 과도하게 반복되는 소재에 대해 반발한 것과 지금의 것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비난은 식상함을 피하고 과도한 극적 전개를 완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 후로 '기억상실'이나 '불치병'같은 소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원래 이런 소재들은 시청자를 강력하게 잡아끌 수 있는 소재였을 뿐, 문학적으로 '나쁜' 소재는 아니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예술적으로 형상화만 잘 시킨다면 시청률과 작품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 좋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소재가 '드라마에서 쓰면 안 되는 것'이 되면서 '나쁜 소재'로 인식이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질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의 소재 중 아주 강력하고 중요한 것 몇을 잃은 것과도 마찬가지인 명백한 손해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이런 소재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지금도 아침 드라마같은 데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소재이고 시크릿가든같은 주말드라마에서도 사용됐으니 앞으로 볼 일이 또 있을 것이다. 전혀 아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몇몇 소재에만 국한된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기억상실에 걸렸다는 것이 매우 유치하고 진부한 소재라는 것에는 충분히 동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시크릿 가든을 비롯 최근의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기억상실보다 더한 진부하고 유치한 요소도 많다. 세상에는 못생긴 사람도 많은데도 요즘 드라마 주인공은 다 예쁘고 잘 생겼다. 완전 까칠하지만 멋있고 맨날 놀고먹는 재벌 2세와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신데렐라도 흔히 볼 수 있다. 기억상실과 견주어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만큼 진부하고 유치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에는 가만히 있다가 기억상실이 나오니 갑자기 와락 달려든다.

이런 모습은 이미 드라마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자기 안에서 만들지 못하고 타인의 것을 어설프게 주입받은 시청자가 야기한 문제다.

이들은 예술 작품에서의 진부함이나 유치함 등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생각해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드라마에서의 기억상실증은 진부하고 유치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직·간접적으로 말했을 것이고 그대로 수용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의 실수가 있었다면 진부하고 유치한 것이 왜 문제가 됐는지, 그것은 왜 진부해질 정도로 많이 사용됐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혹은 기억상실 외에 다른 어떤 요소가 드라마에서 사라져야 했는지 일일이 밝혀 총망라하지 않았던 것도 될 수 있겠다.

'기억상실증만 나쁘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태까지의 그 오글거리는 내용이나 비현실적인 설정, 진부한 전개에는 원래 컨셉이 그렇다며 가만히 있다가 기억상실증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파문이 이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가 쓰레기였다고 말하는 것은 어땠을까? 이쪽이 그나마 일관성은 있어서 비난을 피하기에는 더 좋을 뻔했다.




[written by the colum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