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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칼럼]이제 대한민국에 가수는 필요 없다.






대한민국의 소녀들에게 있어 연예인이란 학교선생님만 보던 안구에 내리는 한 방울 인공눈물과 같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잘난척하는 연예인은 심지어 정말 잘나기까지 해서 허영과 허세를 동경하는 그들에게는 백마탄 왕자요, 우상 덩어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역시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잘생긴데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한다. 남자로서 갖출 수 있는 매력은 다 갖춘 것이 가수다.

그런데 가끔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어린 게 가수 뒷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아이들은 전혀 안 한심하다.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 좋아할 수 있고, 누군가를 숭배하기도 하고, 환상 속의 사랑도 할 수 있다.

한심한 건 가끔 팬이 찍어서 인터넷에 뿌리곤 하는 공연 동영상 속에 있다. 자기가 가수도 아니면서 목소리 출현하는 여중생(으로 추측되는)들이다.

가수가 좋아서 공연장에 갔다는 건 다 이해간다. 그런데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공연장에서까지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야하나? 노래는 하나도 안 들리고 뭐 이상한 울부짖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멸종된 익룡이 살아돌아온 느낌이다.

좋아하는 가수가 노래를 하시겠다는데, 두 손 마주잡고 경청해도 모자랄 판에 지방방송 볼륨을 최대한 높이는 이 매너는, 어느 나라에서 배워온 것일까?

그러다 문득 드는 싸늘한 생각, '그 누구도 노래를 듣고 있지 않다.'

'여기서 노래를 듣겠다고 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 아닌가?' 하며 게슈탈트 붕괴현상이 생각이 생긴다. 정말 필자가 이상한 건가?

그들은 가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완벽한 우상, 아이돌이 되려면, 비주얼과 더불어 노래와 춤'도' 겸비해야 할 뿐이다. 그걸 할 줄 아는 가수들은 소녀 떼의 우상이 될 자격을 충족한다. 일단 우상이 된 다음 그들은 가수도 뭣도 아니고 그냥 사랑하는 오빠가 된다. 굳이 이 오빠에게서 노래를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가수에게서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사라지는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대략 20세기 언저리부터니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시간을 조금 넘게 노래의 가치가 떨어져 왔다면 이제 거의 밑천이 드러날 때가 된 것같다. 그래서일까? 지구 종말의 전조처럼 노래 종말의 전조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1. 주연배우부터 노래까지, 현빈의 시크릿가든

음향 기술이 발전해서 이제는 기계가 웬만한 노래는 대충 역겹지 않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어떻게'부르냐보다 '누가'부르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예를들면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부른 노래가 백지영 뺨을 양쪽으로 때렸다거나 하는 식이다. 중반 이후까지 OST는 백지영이 잘 해 왔는데 후반에 현빈이 갑자기 치고 들어와서 남의 밥그릇을 뺏었다. "잘생긴 사람이 부르면 되는거지 그걸 꼭 전문가가 불러야 돼?"라고 말하는 것 같다.





2. 아이유의 신곡, '3단 고음' 4주째 1위! 

다들 음악에 관심없어 보이다가도 가끔 대중들의 관심이 음악으로 쏠리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최근에는 '아이유'가 그 예다. 그런데 알고보니 아이유의 노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참 극소수였다. '3단고음'에 대한 관심은 노래에 가지는 관심이 아니라 아이유의 호흡과 음역대에 가지는 관심일 뿐이다.

"우와 목소리 댑따 많이 올라가고 호흡도 되게 기네? 신기하다. 거기다가 나이도 어리고 귀여워? 아이유 짱! 아이유가 대세!"

꼭 뭐 아이유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3단 고음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먼저 나와야 되는것 아닌가? 노래 전체적으로 봤을 때 3단 고음은 불필요하다던가, 이번 앨범의 저번 앨범보다 발전이 없다던가, 곡에 자신의 경험을 얼만큼 싣게 되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오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저 안드로메다에서나 이뤄졌고 아이유는 그저 칭송만 받으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3. 명곡의 판단 기준은 춤과 의상

아이돌 그룹 중 삼총사나 걸스데이, 티아라처럼 어떤 가수들은 가끔 요상한 노래를 부르며 네티즌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노래가 나온다는 것 자체도 확실히 문제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문제인 것은 요즘 이상한 노래는 정말 많은데 하필 그들의 노래만 지적받고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멀쩡한 노래 찾기가 더 힘들다. 어차피 노래 수준은 도토리 키재기인데 데 어떤 건 이상해서 싫고, 어떤 건 특이해서 참신하다고 한다. 이 모호한 기준에 맞춰 노래를 만들려면 제작자도 참 힘들겠다.

'쏘리쏘리쏘리쏘리'하는 노래나 '루시퍼루시퍼루시퍼'같은 이상한 주문을 티아라의 '야야야야 우↘히↗ 우↘히↗'와 아무리 비교해 보아도 전자는 특이하고, 후자는 이상하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다 이상하다. 요즘 노래가 하나같이 이상하니까 예전 명곡들이 많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할아버지같은 말 하려는 건 아니다. 이게 유행이라면 인정해 줄 수는 있다. 뭔가 필자는 모르는 미묘한 곡 흐름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지 생각해 줄 수 있다.

거의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이들 노래의 차이점을 노래 밖에서 발견해 냈다. 바로 율동이나 의상이다.  생전 처음 보는 요란하고 이상한 의상에 천둥벌거숭이같은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면 그것은 이상한 노래다. 비슷한 노래지만 유행하는 스타일에 무슨 의미인지 따라하고싶은 단순한 율동을 추는 노래는 참신한 노래다.

율동이나 의상은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그것이 음악 자체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4. 가사는 거들 뿐,

최근에는 노래의 일부분인 '가사'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멜로디만 가지고 무대에 설 수는 없으니 아무 말이라도 하자'며 대충 멜로디에 아무 가사나 끼워넣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노래 가사는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가사가 있어 봐야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가사로 주목받는 몇몇 곡은 노라조의 'rock star'나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같은 곡 뿐이다.

노래 가사 심의같은 건 왜 아직까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의미를 모르는 노래 가사가 좀 선정적이면 어떤가? 구시대적인 기준 때문에 애꿎은 팬들만 피해를 본다. 그들이 화가 나는 것도 이해된다. 앞으로 노래 가사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래 멸종의 징조를 몇 훑어 보았다. 과대 해석이 섞였다고 해도 노래의 가치가 아주 비참하게 떨어졌다고밖에 보기 힘든 상황이다.

예전에는 노래란 아주 고상하고 어려운 것이어서 몸과 마음이 단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함부로 '가수'라는 이름을 달 수 없었고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노래는 누가 해도 상관없는 지금, 굳이 가수란 사람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졌다. 노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팬들에 대한 우상성이 더 중요한 것이라면 가수가 꼭 사람일 필요도 없다. 사이버가수 아담처럼 그냥 가상인간을 만드는 것이 더  완벽한 '우상 덩어리'에 가깝지 않을까?


PS. 이번 포스팅의 컨셉은 시니컬+친근함입니다. 읽기에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의 모든 가수가 아이돌 가수고 모든 팬이 여중생인 것처럼 표현한 점, 다소 과장된 표현 등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니 대충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written by colum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