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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칼럼]'브아걸' 밉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이하 브아걸)는 가인, 나르샤, 제아, 미료로 구성된 4인조 여성 보컬 그룹이다. 내가네트워크 소속, 2006년 1집 앨범 'Your Story'로 데뷔했으며 현재 아이돌 그룹의 끝없는 행진 속에서도 당당하게 활동하며 빛을 발하고 있다.

아이돌도 아닌 그냥 여성 보컬 그룹 주제에 이토록 놀라운 존재감을 뽐내는 브아걸은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충격적이긴 하지만 예쁘다고 할 수는 없는 비주얼에, 다들 나이도 지긋하시다. 노래는 잘 한다고 하지만 노래 잘 하는 애들이 어디 한 둘이냐? 노래 잘 한다고 성공하는 시대는 우리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렇다면 브아걸은 뭐가 그렇게 잘났을까?

그들의 능력치에 매리트가 없다면 다른 것보다도 그들의 음악에서 다른 이들과의 차이점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브아걸은 '블랙 아이드 피스'를 연상시키는 그 이름에서 장르를 짐작하게 한다.

'R&B'
 
눈동자 색과 관련된 단어는 R&B장르가 아니고서야 감히 아무 그룹 이름에나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좀 수상하다. 처음에는 무난했지만 2008년 초, 그녀들이 변했다. 원래 하던 보컬 위주의 음악은 잠시 접어두고 막 태동하던 일렉트로니카에 후크를 가미한 L.O.V.E를 선보였다. 이전에도 놀라운 가창력 어쩌고 하며 나름의 주목은 받았지만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우연처럼 떠오른 이 노래는 이후 아직까지도 지지않는 일렉트로니카 열풍을 이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돈 때문에 시류에 편승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의 '어쩌다'는, '아브라카다브라'는?

계속된 성공마저 운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지났다 싶으니 일렉트로니카에서 슬슬 발을 빼는 기민함마저 보여준다.

유행하는 곡을 만들고, 부르고, 히트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행하는 곡을 부르기만 한다면 성공한다고 쳐도, 따라하는 순간 구식이 되는 것이 가요계다. 로또도 계속해서 맞는다면 운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의심해 봐야 한다.

브아걸의 음악은 트렌디하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음악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남들이 다 하는 음악을 따라한다는 뜻은 아니다. 브아걸은 트렌디 중에서도 항상 그 흐름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다.

새 유행을 창조하지는 않지만 유행의 전조를 한 발 빠르게 캐치하고 반 박자 빠르게 보여준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오게 될 유행이겠지만 그들보다 한 발 앞서는 것으로 경쟁에서 승리한다.

흐름을 빨리 읽어내는 것은 주식 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중요하다. 무릎에서 컴백해서 어깨에서 고별무대를 가져야 많이 남겨먹을 수 있다. 그래서 유행의 흐름을 잘 읽는 음악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정받곤 한다.
 
그런데 이것은 가수의 영역이라기보다 프로듀서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브아걸은 단지 프로듀서를 잘 만난 것인가? 같은 제작자라면 누구나 그런 정도의 인기를 구가할 수 있을까? 

단순히 프로듀서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유명한 프로듀서가 밀어준다고 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잘 나가던 아이돌 그룹인 원더걸스를 예로 들어 보자. JYP의 박진영은 남다른 감각으로 대중의 복고에의 수요를 예측했고 원더걸스에 그것을 주입해 큰 인기몰이를 하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유행은 지났고 원더걸스는 기억에서 잊히는 중이다. 미국진출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진출이 아니더라도 지금와서 '텔미'같은 노래를 다시 부른다면 이 뽕짝은 뭐냐며 카라나 소녀시대에 묻히고 말 것이다.

물론 JYP가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를 이제와서 또 시키지는 않겠지만, 원더걸스가 이제와서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전형적 여성 아이돌 그룹이다. 아이돌이 반짝 떴다 사라지고 마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 가수를 만드는 것은 속성과정과 같다.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이나 역량은 무시한 채 대중이 요구하는 능력만을 주입시킨 뒤 대중 앞에 세운다. 그렇지 않으면 급변하는 음악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킬 그룹을 만들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아이돌 그룹은 컨셉에 맞는 그들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유행이 바뀌면 이들의 색깔은 버림받고 소속사는 새로운 아이돌을 만든다.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아이돌 그룹은 매 앨범마다 변신을 한다. 1집에서 청순한 이미지로 어필했다면 2집에서는 성숙한 이미지, 3집은 파워풀하게.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않는다. 연두색이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은 쉬워도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은 어렵다. 나름대로는 변화를 해도 결국은 거기서 거기인 모습인 것이다. 박지윤도 그런 식으로 도태되었고 빅뱅도 같은 이유로 도태되는 중이다.

원더걸스도 마찬가지로 일련의 과정에 있을 뿐이다. 소모품처럼.

반면 브아걸은 애초에 아이돌 가수로 키워지지 않았다. 실력파 여성 보컬 그룹이었을 뿐. 이들은 이미 실력이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준비 과정 필요 없이 어떤 유행의, 어떤 노래건 원래 하던 장르인 양 소화할 수 있다. 본인의 색깔을 가졌지만 그것을 이용할 수도, 때에 따라서는 완전히 버릴 수도 있는 진짜 프로다.

그들의 성공은 단순히 작곡이나 마케팅, 프로듀싱의 승리가 아니다. 그들이 누구보다 빨랐고 남들과는 달랐던 이유에는 얼굴이나 나이도 막을 수 없는 근본적 차이가 있었다. 최고의 프로듀싱도 그들과 함께 했기에 3배, 4배로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브아걸이 대단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필자는 그녀들이 참 싫다. 모두가 똑같은 노래를 하고, 유행이 아니라면 아예 앨범을 내지도 않는 최근의 가요계를 만든 일등공신 중에는 브아걸도 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이런 노래가 유행하니까 다들 잘 보고 따라해!'하는 그들이 없었다면 가요계가 적어도 지금만큼은 획일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녀들의 잘못은 아니다. 노홍철의 사기가 재능이고 조권의 깝이 매력이듯, 브아걸의 트렌드세터 기질은 능력이다. 적어도 진짜 음악이 뭔지도 모른 채 따라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낫다.






[written by colum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