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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칼럼

[창작/제갈덕주] 눈 위의 붉은 꽃이 핀다면

<눈 위에 붉은 꽃이 핀다면>

 

보리수 아래에서 7년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는 열반에 들기 전에 자신의 법을 가섭에게 전했는데, 이 가섭이라는 사람이 바로 이심전심과 염화미소의 전설로 유명한 그 제자였다. 이후 가섭으로부터 인도의 여러 승려들에게 그 법맥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달마에 이르게 되었다. 인도 사람 달마가 그 깨달음의 진수를 들고 중국에 와서 소림사가 있는 숭산의 동굴에서 구 년 면벽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인도에서 큰 스승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는데, 어느 하나 달마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혜가라는 사람이 도를 배우겠다고 달마를 찾아왔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했듯 그 날도 달마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참선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혜가라는 사람이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고 동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달마가 나와서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러고 있는 것인가?”

 

혜가가 말했다.

 

저는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달마가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네. 그러니 돌아가게.”

 

달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들어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혜가는 돌아가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밤새 내린 눈이 두 어깨와 머리 위에 쌓여 눈사람이 되어갈 때쯤 달마가 다시 나와 말했다.

 

이래도 소용없네. 그만 돌아시게.”

 

혜가가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달마가 말했다.

 

그대가 이토록 억지를 쓰니 어쩔 수 없군. 만약 이 엄동설한의 눈 위에 붉은 꽃이라도 핀다면 내가 그대에게 도를 전하겠네.”

 

혜가가 기꺼워하며 말했다.

 

정말 붉은 꽃만 피면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다른 말씀을 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달마가 허허롭게 웃으며 그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혜가가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어서는 왼 판을 힘껏 베어버렸다. 그러자 팔뚝이 떨어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서는 온 눈밭을 붉게 물들였다.

 

“...보십시오. 눈 위에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그러자 피 뭍은 눈꽃을 보며 달마가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게. 나의 법이 이미 그대에게 전하여 졌다네.”

 

그날부터 혜가는 달마의 가르침을 받아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사람이 바로 중국 선종의 2대 조사가 된 혜가대사이다. 혜가대사의 구도에 대한 열정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소림사에서는 오늘날까지 합장을 할 때 한 손으로 반장 인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요즘, 눈 위에 피는 붉은 꽃을 보고 싶다.

 

[개인블로그] 제갈덕주의 문학창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