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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칼럼

[창작/제갈덕주] 응화존신기

[應化尊神記]

 

아브락사스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허허로움. 치열했던 삶을 마감하고 이제 그에게 허락된 마지막 권리를 집행하고 있는 사나이. 곧 삶도 죽음도 없는 근원의 세계로 돌아가 안식에 들고자 했다.

 

그 옛날 승려들은 마지막 남은 육신의 찌꺼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다비식이라는 장례를 지냈다고 한다. 마왕의 아들로 태어나 마족이기를 거부한 남자, 아브락사스는 자신만을 위한 다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을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아브락사스는 들보리 산맥에 올라 장작더미들을 한 단씩 쌓아 올렸다.

 

오직 들보리 산맥에서만 자란다는 악마의 나무를 말려 만든 장작더미. 마족이라면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는 저주받는 나무 크리슈나무르티. 빛과 생명의 나무, 그래서 웬만한 마족은 근처에만 가도 소멸되고 마는 공포의 나무. 아후라마즈다의 성령이 깃든 나무. 생명이 넘쳐 죽음을 낳는 나무. 장작더미를 잡는 아브락사스의 손이 모닥불처럼 자글자글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는 고통을 참으며 장작더미를 쌓아 갔다.

 

전설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이 있던 그날, 아후라마즈다(광명대신)가 휘두른 칼에 앙그라마이뉴(암흑대신)의 옆구리가 찢어지면서 바닷물만큼의 피가 흘렀고, 그 피가 마그마가 되어 세상을 전멸지경에 이르게 하였다고 전한다. 지상에서의 전쟁은 광명의 무리가 승리했지만, 세상은 암흑의 피에 물들게 되었다. 아후라마즈다는 그를 따르는 광명의 무리를 이끌고 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앙그라마이뉴를 따르던 암흑의 무리들 또한 패배의 후유증을 안고 지상을 떠났다. 버려진 지상에서는 아귀와 수라 그리고 축생들이 번성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들의 먹이와 노예가 되었고, 지상은 지옥으로 변해갔다. 그때 한 무리의 보살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살아남은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아후라마즈다의 명령을 저버리고 지상에 남은 천족들이었다. 아후라마즈다의 전략참모였던 미륵보살과 전투단장을 맡았던 지장보살. 이들은 각기 그들의 권속들과 더불어 살아남은 인간들을 규합하였다. 그들은 들보리 산맥에 들어가서 결계를 치고 인간들을 교화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고 마침내 천족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깨달음을 얻은 그날. 그들은 이곳 들보리 산맥의 보리수 아래에서 다 함께 열반에 들었다. 그때 타고 남은 육신에서 사리 수 만 과가 나왔는데, 이 사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보리수의 양분이 되면서 태어난 나무가 크리슈나무르티라고 한다.

 

아브락사스가 마지막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고,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 보고 있을 때였다. 산맥이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지진과 더불어 7인의 무리가 나타냈다. 지난 천 년간 가끔 그를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던 동지들. 루시퍼, 벨제부브, 마몬, 벨페고르, 레비아탄, 아스모데우스, 사탄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벗들을 향해 아브락사스가 인사를 건냈다.

 

나의 벗들이여, 어둠의 군주들이여! 그대들이 왔는가?”

 

루시퍼가 무리를 대표해 말했다.

 

고귀한 자여, 스스로 고귀함을 버린 자여, 바닥에 닿은 자여! 나의 벗이여. 그대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나는 이제 저 천 만 억 나유타밖에 유리세계를 짓고 그만 안식에 들고자 하네.”

 

어찌 가려는가? 우리를 두고 어찌 가르는가?”

 

때가 되었다네. 나의 벗이여.”

 

그대가 그 옛날 마왕의 권세와 권능을 스스로 버리고 떠나고자 하였을 때 우리는 그대를 손가락질 하며 비웃었지. 그러나 벗이여. 우리는 알고 있었네. 그대만이 오직 이 어두운 지상에 유일한 빛이라는 것을. 빛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아귀, 수라, 축생의 후예들에게 그대는 희망이며 이상이며 경외의 존재. 그런데 그대 어찌 이리 야속하게 떠나고자 하는가?”

 

아브락사스는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탄이 말했다.

 

그만하게. 루시퍼. 나의 벗이여. 그대가 가려는가? 도저히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인가? 그러하다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루씩만 시간을 주게. 벗으로서 그대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일세.”

 

사탄의 간절한 부탁에 아브락사스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남긴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연. 그 인연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으로 마지막 7일을 그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일분일초가 아쉬운 마음에 잠도 자지 않고 7일 밤, 7일 낮을 묻고 답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날 아브락사스는 일곱 벗이 보는 가운데 장작더미에 올랐다. 장작더미에 오르니 그의 몸은 저절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성스러운 기운이 그의 암흑에너지를 태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다. 지상은 자정작용에 의해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환경으로 변해 갔고 지구를 떠났던 무리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명이 나고, 인류가 나고, 문명이 생겼다. 마침내 어느 날 아브락사스는 고대 인도의 어느 부족에 왕족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그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불렸다.

-덕주나라 국립신앙원 간행 사이비연구총서, “지옥재림교 시리즈”, <마왕각성> 2장 응화존신기 중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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