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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야기/칼럼

[칼럼]문학의 무게와 깊이는 비례할까?






'무게와 깊이가 비례하는가?'는 질문은 아직도 내게 끊임없는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니, 글이 가진 무게감이 그 글의 깊이를 좌우하느냐는 말이다. 예를 들어 전쟁이나 시민운동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무협지나 연애소설보다 더 문학적 깊이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흔히들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표현을 주로 쓰는데, 정작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전문적으로 표현하자면 문학의 성격과 특성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에 부합하는 일정한 틀을 제시해야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문학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궁리하다 보니 '깊이'야 말로 문학성을 측정해주는 가장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들 작품을 평가할 때 '깊이가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 때의 깊이야말로 문학성의 잣대요, 측정단위가 아닐까 싶다.

독자가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이 어느 땅 속에 보물처럼 묻혀있고, 작가가 땅을 파헤쳐서 그 보물을 찾는다고 상상해 보았을 때 얼마나 구덩이를 잘 파헤치는가, 얼마나 깊이 뚫고 들어갔는가 하는 것! 그것이 문학성이라고 생각한다.

글이란 삶이다. 글이라는 것은 그 어떤 방식과 주제를 담고 있더라도 인간을 둘러싼 삶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삶은 사람과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다만, 그 단면을 한 아름 베어내 맛볼 수 있을 뿐이다. 글이란 그렇게 삶의 한 면을 잘라서 다듬어 놓은 하나의 예술품이다.

그렇게 삶의 한 면을 베어낼 때에 얼마나 필요한 부분을 잘 찾고 정확히 베어낼 것인가 하는 것은 앞서 말한 '얼마나 깊이 있게 땅을 팔 것인가'와 상통한다. 글을 쓰기 위해 그 글에 담을 삶을 얼마나 정성을 다해 후벼 팠는가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깊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후벼 파고 도려내고 다시 접붙이는 과정에서 글은 깊어진다.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철학적 고찰이면 철학적 고찰, 역사적 사실이면 역사적 사실, 정서적 서정이면 서정! 어느 것이 되었든지 메시지에 대해 누구나 볼 수 있는 면이 아닌 그 이상의 세계가 보일 때까지 후벼내고 또 파야한다. 그런 다음에 주제를 담기에 적합한 분위기와 구성, 어휘표현등 가지가지 요소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남들처럼은 안 된다. 남이 보지 못한 보물을 찾을 때까지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그 구덩이에 관심을 가지고, 그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깊이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가끔씩 많은 사람들이 깊이를 무게와 착각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글의 주제나 분위기가 가진 무게감이 마치 글의 깊이를 깊게 해주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내가 파야할 구덩이 위에 어마어마하게 무겁고 큰 돌덩이가 한 번 굴러갔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그 자리에 약간의 구덩이가 파일 것이다. 무거운 돌덩이 탓에 땅이 깊게 파인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일 뿐이다. 내가 노력해서 파진 구덩이가 아니라, 돌덩이가 지닌 무게감 탓에 뭔가 파인 듯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착각과 환상 속에 빠져 있다. 그래서 글에 녹아 있는 삶의 깊이를 읽으려 하기보다 글을 둘러싸고 있는 무게감을 느끼려 한다.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글에는 무게감을 조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은 주제의 무게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정서나 영웅의식은 대체적으로 가볍다. 반면 사회 개혁을 바라거나 비판 의식을 담은 주제는 대개 무겁다. 글이 지닌 분위기도 무게감을 지닌다. 예를 들어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것은 가볍고 장엄하거나 비장미가 느껴지는 것은 무겁다. 그 외에도 보편적인 의식흐름에 바탕을 둔 구성방식은 가볍고 특수한 조작을 한 구성방식은 그만큼 무게감이 가감된다. 또 딱딱한 어휘가 많을수록 무거워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깊이에 대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부속품인 것이다.

무게감이 많은 요소들을 변인으로 쓴다고 해서 꼭 깊이가 깊어진다는 함수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환경적인 요인이 문학의 깊이를 더 해줄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삶을 후벼 파는 삽질은 작가 스스로 이룩해야하는 것이다. 사회 개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부족한 칼럼보다는 사랑에 대해 절절히 파고든 연애소설이 훨씬 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거운 요소를 쓸 것인가 가벼운 요소를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작가의 취향과 독자의 기호에 달려 있다. 그것은 문학성의 깊이를 높여주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삶에 대한 작가의 끈기 있고 정성어린 탐구야 말로 문학의 깊이를 높여주는 그것이리라. 글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라면 어서 빨리 무게가 주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written by 건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