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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리뷰

[영화리뷰]잔잔한 멋의 로맨스, '만추'

한국 취업 신문 동시 게재(http://www.koreajo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6)






아시아 최고의 인기 배우 현빈과 탕웨이 주연,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의 한중 합작영화 '만추'. 슬슬 성과가 정리되고 있다. 지난 17일 개봉 이후 현재 6일이 지난 시점에서 약 50만 명의 관객이 만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다녀갔다. 개봉 전 국제 영화제와 평론가의 극찬을 생각하면 예상에 한참은 못 미치는 성적표다. 이대로라면 영화가 내려질 때까지 통틀어도 100만 관객이나 넘을지 모르겠다.

실패한 영화라 치부하기 쉽지만 장르적 특성을 생각하면 실패도 아니다. 포털 사이트나 모 블로그에서는 만추를 멜로로 분류한다. 그리고 '재미가 없었다.'라는 평가를 하곤 한다. 그러나 전제부터 틀렸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한 번도 멜로였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멜로'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다.

'멜로'란 멜로드라마(melodrama)라고도 불리며 우리가 알고 있는 '통속극'의 의미를 지니는 것을 뜻한다. 사건 변화와 갈등이 격렬하며 선정적이다. 대중의 흥미를 끌게끔 만들어진다.

만추는 처음부터 통속극이기를 거부했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일 뿐이다. 따라서 대중성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옳은 감상법이다.

물론 만추는 저 예산 영화도 아니고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인 독립 영화도 아니다. 상업영화인 이상 일정 이상의 흥행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그건 제작사의 입장에서 판단할 문제. 관객인 우리는 남의 돈벌이에서 신경 끄자. 조금 다른 접근법으로 영화를 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중성을 제외한다면 영화는 나쁘지 않다. 만추는 뚜렷한 스토리 라인이나 극적 전개가 부족하지만 인물의 감정 흐름 묘사와 감각적인 화면 구성 측면에서 탁월하다. 사랑에 대한 경계심과 갈증 사이에서 서성이는 애나(탕웨이 분), 그에게 다가온 사랑을 파는 남자 훈(현빈 분), 자욱한 안갯속의 시애틀과 3일간의 유예, 알 듯 말 듯한 사랑…….

주인공의 감정 흐름과 낭만적 분위기 전달을 방해하는 나머지 요소는 최대한 배제됐다. 인물의 개인사나 구체적 사건의 진행, 이야기의 방향 등은 설명되지 않았다. 화면 안에 보이는 상황 밖의 것은 모두 관객의 상상에 달렸다. 덕택에 이야기를 짐작할 수 없었고 지루했겠지만 폭발적 감동이나 이유 없이도 관객의 심장은 뭉클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눈물이 나더라'는 한 관객은 적어도 그랬다.

많은 영화 관련 종사자들이 지적하는 바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영화는 너무 말초적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 만추는 늦은 가을 시애틀의 이미지로 사색하는 법을 잃어버린 관객에게 잔잔함의 멋을 알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아날로그적 감성을 회복한다면 만추는 명작 로맨스로 거듭날 것이다.





[written by colum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