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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비평

[비평]'살인의 추억'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파헤치다 (상)

한국 취업 신문 협력 기사(http://www.koreajo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52)











영화를 분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영화 안에서 일어난 서사적 사건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못지않게 영화 속에 숨어있는 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나열된 서사적 흐름이라면 숨어있는 의도까지 파악하는 것은 그닥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작자의 의도래봐야 별 것 없을테니까. 정신분석학이나 문체론정도는 돼야 작가가 어떤 심리로 글을 썼는지 조금쯤 파악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문학에 속하는 것이다.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도 작자의 메시지와 사상, 작가의식이 넉넉히 녹아 있다.
 
따라서 영화를 볼 때 서사의 흐름만 파악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의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수박 겉 핥기' 식 감상이 되고 만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다. 단순히 시간 떼우기, 스트레스 해소 용으로 존재하는 영화도 있다. 이런 것들은 '영상 예술'이라고는 할 수 있어도 '문학'의 일부로 쳐 주기는 힘들다. 이야기는 이야기이되 문학적 특징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영화의 감상 방식은 다르기에 누군가에게는 이런 영화도 훌륭한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시간 떼우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떼울 무언가가 제공됐다면 그것으로 됐지 또 뭘 더 바라겠는가? 이런 영화를 붙잡고 뭐 작품성이 어떻고 메시지가 저렇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라면? 어떨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숨은 의미를 2중, 3중으로 깔아놓는다. 플롯 자체가 수면 위의 것, 아래의 것으로 나뉜다. 이중 플롯이라는 것이다. 그냥 재미로 봐서는 안 될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분석한다는 것은 단순한 서사의 흐름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녹아있는 의미의 조각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완전한 담론으로 재탄생시키는것, 거기까지가 봉준호 감독 영화에 대한 분석 방법이다.

즉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분석할 때는 영화의 표면적 서사 분석과, 심층적 의미를 분석하는 두 가지의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심층적 의미 분석은 표면적 서사를 분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나 살인의 추억의 경우 그 표면적 서사조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영화 속 갈등양상과 전개에 대한 분석 없이는 심층적 분석도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살인의 추억을 분석하는 순서로 가장 먼저 서사 구조를 분석해 그 표면적 의미를 명확히 한 뒤, 이면에 담긴 내용을 알아내는 것으로 하겠다. 영화를 보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스토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영화를 본 다음 글을 읽거나 다른 리뷰 등을 토대로 스토리를 이해한 후 이 글을 읽기 바란다.







옴니버스식 구성이 아닌 이상 갈등구조가 복합적이라 해서 많은 사건이 모두 병렬적이거나, 큰 틀로 묶을 수 없을만큼 다수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의 사건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주제을 향해 펼쳐지는 연관된 사건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보통 작은 사건들을 잘 정리하면 큰 하나의 이야기와 주제로 묶이게 된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작은 사건들을 모아보면 큰 두 개의 이야기가 생겨난다. 이를 하나로 완벽하게 묶기란 어렵다. 영화의 주제를 한 마디로 축약하려 시도한다면 느낄 수 있다. 

'범인과 형사의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슷햇지만 그러나 정답은 아니다. 범인과 형사의 대결이 주가 되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축약해 버린다면 이 흐름에서 빠지는 '형사 내부의 갈등'은 핵심 사건이 아닌 부차적 사건으로 전락한다. '형사 내부의 갈등'은 이렇게 간단하게 부차적 사건으로 요약하기에는 그 중요도가 너무나 크다. 그렇다고 또 '형사 내부의 갈등'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역시나 완벽하게 핵심 사건을 요약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접속사를 이용해 이 모두를 한 문장으로 이어붙이면 되겠지만 이건 요약이라고 부르기에 좀 민망하다.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바로 살인의 추억이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이다.

정말로 이야기가 둘로 분리되어 하나로 묶을 수 없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 그렇다. 영화란 어떤 하나의 목적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하나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영화의 초점이 흔들렸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유명한 살인의 추억도 해리포터처럼 그냥 재미로 만든 영화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 분석을 서사구조에 따라서만 했기 때문이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표면적 서사 뿐 아니라 심층적 의미 파악까지 완벽히 이루어 져야 제대로 분석한 것이라 했다.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둘 중 하나밖에는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층적 의미 파악이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올 수가 없다.

심층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사 구조부터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순서다. 서사구조의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심층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생각이 흔들리기 쉽다.

살인의 추억은 어떤 구조로 설계된 영화인 것일까? 우선 주된 갈등부터 찾아보자. 크게 두만과 태윤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형사 내부의 갈등', 그리고 범인을 잡기 위한 '형사와 범인 간의 심리적 갈등'. 이 두 가지로 나눠진다. 두 갈등이 복합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모든 주 인물이 움직이는 궁극적 목표는 범인을 잡는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범인을 잡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내용이 전개되고 '도입-상승-위기-하강-결말'의 기본형 갈등 구조도 충실하게 따른다. 

그러나 영화 전반부의 갈등은 범인과 형사 사이에 있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갈등은 대부분 경찰서 내부에서 생기고 초점 역시 그것에 맞춰져 있다.

만약 영화의 전체의 목적이 범인을 잡는 것 뿐이었다면 도입부분은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에 착수하는 장면이어야 할 것이고 상승부는 점차 형사와 범인이 심리전을 벌이는 부분일 것이다. 위기는 심리전이 극에 달하는 부분일 것이고 하강부는 수사망이 좁혀지는 부분, 결말은 수사 종결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영화는 어떤가? 도입부분에서 이들은 수사에 착수는 한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상의 진전이 그들에게 있었던가?  되도않는 용의자만 죽치고 뭐 자장면이나 먹고 하는 것 밖에는 없다. 사실상 처음부터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않았던 것과 비교해도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태로 영화는 중반 까지 흘러간다. 이제 한참 범인에 가까워져야 할 시점에 아직도 점집이나 들락거리면서 노닥거리고 있다. 만약 이게 전부였다면 관객은 도대체 범인은 안잡고 언제까지 이런 코미디만 보여줄거냐며 지루해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 전반부는 범인을 잡는 데 있어서는 진전이 없었지만 애초에 초점이 범인 검거에 맞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사 내부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두만과 태윤 형사의 수사 방식의 차이에 따른 자존심 싸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 갈등을 해소시키고 난 다음 후반부에 드디어 형사와 범인과의 갈등이 진행되고 초점이 맞춰 진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표

(표)살인의 추억 갈등구조



이것은 단순한 두 갈등 구조가 시간적으로 연속되었다기보다는 인과관계가 얽혀있는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형사와 범인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형사 내부의 갈등부터 해결해야 되는 것이다.

영화 전개의 궁극적 목적인 범인 잡기는 그 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마지막에 유전자 감식 결과 이후의 갈등은 열린 결말에 의한 것으로 또 다른 제 3의 문제가 개입한 때문인데 이 부분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자.

즉, 서로 다른 갈등양상으로 보였던 이 두 흐름은 하나로 뭉쳐지지는 않으면서 또 뗄 수는 없는 관계, 그러나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종속되지 않는 묘한 관계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지금까지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표면적인 서사를 따라 훑으며 그 속의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도록 하겠다.
 
분석이라기보다 '해독'에 가까운 작업이 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기존의 해석에서 누군가 했던 것처럼 기본 전제를 과도하게 맹신해 난해한 범위의 소재까지 끌어들여 과대 해석을 하는 과오는 범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지나치게 미시적이고 아전인수식 해석보다는 읽고 나면 누구나 납득할 해석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written by colum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