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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 리뷰

[영화리뷰]미숙한 재능이 낳은 습작 '돌이킬 수 없는'



한국 취업 신문 협조 기사(http://www.koreajo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45
)










박수영 감독, 김태우, 이정진 주연의 '돌이킬 수 없는'은 2010년 11월 개봉한 아동 성 폭행, 살인을 소재로 한 미스테리, 드라마 장르의 영화이다. '살인'과 '미스테리'가 주요 골자로 하지만 '스릴러'보다 '드라마'가 앞선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동 실종·살인 사건이 일어난 한 마을을 배경으로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사회 계층 간의 부조화, 현대인의 근거 없는 두려움과 편견이 낳은 비극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상징으로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범인을 찾는 것 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하거나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피의자의 억울함 등 각 인물의 심리 상태에 유의하며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극중 노충식(김태우 분)은 미림(조민아 분)이라는 어린 딸을 소중히 여긴다. 그는 새로 마을에 이사를 왔는데 몇일 후 미림이 갑자기 실종된다. 그리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노충식은 성 범죄 전과가 있는 유세진(이정진 분)을 의심하게 되고 형사들이나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나 증거불충분으로 구속하지 못한다. 노충식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그는 결국 유세진을 살해한다.

아동 성 폭행이라는 소재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현실 반영을 제대로 한 듯한 영화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2010년은 '성 범죄의 해'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성 범죄가 화두였다. 시기적으로 조금 식상해진 감은 있다만 적어도 나쁜 흐름을 탄 것 같진 않다.



 



시놉시스만 보면 소재도 소재거니와 적당히 만들면 적당한 평가를 받을 정도 영화는 돼 보인다. 관객들에게 민감한 성 범죄 소재에 좀 생소하지만 나빠보이지 않는 미스테리와 드라마의 조합도 괜찮다. 딸을 잃게 된 아버지의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러나 영화는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이외의 것도 문제가 된다.


영화가 잘못된 모든 책임을 감독에게 돌리면 좀 심하겠지만 이번에는 대체적으로 감독 탓을 좀 하고 싶다. 박수영 감독은 단편영화 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다 2009년 첫 장편 영화 '죽이러 갑니다'를 만들었고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이다. 상업영화에는 이제 막 도전장을 내민 신인 감독이다. 그래서 연습 작이란 느낌이 강한지는 몰라도 너무 실험적이고 단편영화 같았다.


플롯은 너무 쉽고 단조로웠다. 미스테리 장르라고 부르긴 하지만 전혀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이 없었다. 너무 평이했던 나머지 심지어는 관객이 반전이 숨어 있기를 기도할 정도였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인 약 80분 정도가 지나갈 무렵에는 '혹시 내가 방금 본 것이 반전……. 아, 아닐 거야. 또 있겠지.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반전을 기대한 것 자체가 반전이었을 정도. 정말 그랬다면 이건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반전이다.


그러나 플롯보다 중요한 문제는 바로 '메시지'에 있다. 사실 플롯을 망쳐놓은 근본적인 원인은 박수영 감독이 '너무'강한 메시지 전달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유불급'이란 뜻이 아니라 그만한 그릇이 안 되는 영화에 엄청나게 무거운 메시지를 담았으니 그릇이 깨질 밖에.


 빈약한 플롯에 비해 영화 전체가 상징 덩어리다. 충무로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상징과 메시지를 자유자재로 주무른다는 봉준호 감독도 아무 그릇에나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 격' 박수영 감독은 괜히 무리하려다 그냥 흥미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것만 못하게 됐다.

영화는 한 시간 반도 안 되는 작은 이야기에 성 범죄와 관련한 거대 담론을 끼워넣고 사회 현실을 비판했다.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나 이야기가 흐름을 못 찾고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예를 하나 들자면 영화 중간에 잠깐 용의자로 지목되는 '미술교수(오광록 분)'. 혼자 되게 심오한 척 하면서 사건에 도움은 전혀 안 주고 선각자처럼 자기 할 말만 한다.


아, 그래도 미술 교수가 있는 건 좋았다. 그나마 볼만한 장면이 몇 초 생겼다. 누드모델이 미술 교수와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의 일종의 하이라이트였다.


물론 그 모든 장면에 심오한 '어떤' 의미가 있었겠지만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다. 그런 자잘한 부분에 모두 의미부여를 하면 A4용지 20장은 족히 나올 것이지만 '영화로서' 가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른 학문 분과에서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럴 거면 그 쪽 형식에 맞는 다른 장르의 예술로 만든 것이지 뭣 하러 영화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영화에 메시지 따윈 필요 없으니 재미있게만 만들자.'는 멍청한 이야길 하려는 것이 아니다. 괜한 무리수로 멀쩡한 영화를 망친 것 같아 하는 소리다.


묘사는 분명 사실적이고 디테일했다. 피의자, 그들의 가족, 피해자의 가족, 경찰과 마을 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입장과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장면들의 개연성이 부족했다. 덕택에 현실세계에서 거의 일어날 일 없는 전개가 발생한다. 작의에 의거한 어쩔 수 없는 설정이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감독이라면 영화를 위해 인물과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지만 이런 부분이 과도하게 쌓이면 그냥 개연성이 떨어질 뿐이다.


개연성이 떨어지니 설득력이 떨어지고 몰입이 안 된다. 영화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게 된다. 감독의 의도를 잘 알겠고, 전달 받았는데도 감흥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메시지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요즘 조숙한 중학생 정도면 할 법한 사회비판이 그것이다. 영화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마치 자기만 아는 것인 양 아는 척 하면서 무지한 관객을 계몽하려 한다. '상록수' 이후로 너무나 교과서적인 계몽영화다.


총체적 난국 속에 드라마 자체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 볼만 했다. 성 범죄 전과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 수가 없는 유세진과 그 가족,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몸서리치는 노충식, 누구를 탓할 수도 동정할 수도 없는 날 선 상황에 대한 묘사는 관객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라면 역시 통속적이고 말초적인 것 보다는 나름의 의미가 담긴 예술 영화가 좋다. 그러나 비싼 돈 들여 만든 상업 영화라면 일단 그것은 '대중영화'가 된 다음의 일이라고 본다.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은 제작비가 많이 투자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업영화다.


여러 모로 이번 박수영 감독의 이번 영화는 좋았다고 표현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충무로의 기대되는 신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금의 영화가 훌륭해서는 아니다. 아직 발현되지 못한 그의 재능이 옅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숙한 재능을 억지로 끌어내는 바람에 습작이 나왔지만 그의 재능이 온전히 가닥을 잡기 전까지는 속단하기에 이르다.




[written by columntist]